다음 날 아침, 스텔라는 찜찜한 기분을 느끼며 눈을 떴다. 얼굴에 뭐가 묻어 있는 것 같고 근질근질한 느낌이 들어 손끝으로 볼을 살짝 만졌다.
“이게 뭐야!”
아침에 일어나면 팅팅 붓긴 해도 피부만큼은 매끌매끌했었다.
그런데 지금 스텔라의 손끝에 닿는 감촉은 흙바닥처럼 거칠거칠했다. 놀란 스텔라가 벌떡 일어나 거울 앞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거울을 본 스텔라는 다시 한번 기함을 하고 말았다.
“이게 뭐야?”
거울 속 스텔라는 얼굴에 진흙을 잔뜩 바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 이런 짓을!”
스텔라는 이런 황당한 일을 할 사람은 베르두라 성 안에서 땅 요정밖에 없다는 걸 떠올렸다. 그녀는 씩씩대며 침대 밑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하지만 요정들의 침대는 텅 비어 있었고, 자기가 정성 들여 만든 침대도 흙으로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얘들이 진짜!”
선물을 줬더니 오히려 짓궂은 장난을 친 땅 요정들 때문에 속이 상했지만 지금은 밀라가 방에 들어오기 전에 세수부터 해야 했다. 욕실이 방에 딸려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세수를 깨끗하게 하고 나온 스텔라는 거울을 보고 깜짝 놀랐다. 평소와 얼굴빛이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왜 광이 나지?”
피부가 진주알처럼 뽀얗게 빛났고 삶은 달걀처럼 맨들맨들했다. 게다가 적당하게 촉촉하고 부드러워 따로 화장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피붓결이 무척 좋았다.
“설마, 흙 때문에?”
평소와 달랐던 점이라곤 요정들이 장난으로 얼굴에 발라 놓은 흙뿐이었다. 그 흙 속에 피부에 무척 좋은 성분이 들어 있나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요정들의 힘이 큰 것 같았다.
얼굴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생각하고 화만 냈던 스텔라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부글부글 끓었던 속이 싹 가라앉았다.
“나중에 오면 물어봐야겠다.”
기분이 좋아진 스텔라가 거울을 보며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들렸다. 스텔라는 보고 있던 거울을 얼른 치우고 바르게 앉았다.
“들어와.”
방으로 들어온 밀라는 다른 날과 다름없이 오늘의 일정에 대해 설명하려다 스텔라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왜?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늘은 사냥제 때 황제 폐하께 드릴 자수 손수건을 완성해야 하는 날입니다.”
“아…… 자수.”
스텔라는 싫은 티를 팍팍 냈다가 바느질 연습을 열심히 해서 땅 요정들의 이불을 만들어 줘야겠다고 생각하자 전에 없던 의욕이 마구 솟았다.
“알겠네. 오늘부터 시작하면 되는 거지.”
수놓는 것을 그렇게 즐기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의욕적으로 대답하는 그녀를 의아하게 바라보던 밀라가 들고 있던 바구니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예. 공주님. 재료는 준비를 해 놓았습니다.”
바구니 안에는 실크로 만든 손수건 여러 장과 알록달록한 색실이 가득 들어 있었다.
“다른 공주들도 수놓느라 바쁘시겠구나.”
다들 황제의 눈에 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하지만 스텔라는 바구니 안에 있는 네모반듯한 손수건을 보자마자 땅 요정들의 이불 사이즈에 딱이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물론 겨울 이불로는 좀 얇긴 하겠지만 두 장을 겹쳐 바느질을 하고 그 사이에 깃털이나 푹신한 천 조각을 넣으면 충분히 겨울 내내 덮을 수 있는 이불이 완성될 것 같았다.
“만약에 실패하면 어쩌지?”
“괜찮습니다. 여분의 손수건 천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거 다행이네. 아 참, 내가 실패한 것도 두고 가.”
“예?”
“그냥 버리긴 아까우니 거기에 몇 번 더 연습을 해 보려고 그래.”
“연습하실 손수건 천은 충분히 더 갖다 드리겠습니다.”
“고마워. 그래도 두고는 가.”
“예. 공주님.”
밀라는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자신의 부족한 실력을 어떻게든 메꿔 보려고 노력한다 여기고는 방을 나섰다.
스텔라는 손수건에 각각 요정에게 어울릴 만한 수를 놓기 시작했다.
봄의 요정인 아크의 손수건엔 노란 병아리와 새싹을, 여름의 요정인 에스타에겐 시원한 빗방울과 짙푸른 나뭇잎을, 가을 요정인 오톤의 손수건엔 도토리와 낙엽, 마지막으로 겨울 요정인 이베르의 손수건엔 하얀 눈사람을 수놓았다.
“무엇을 수놓으신 겁니까, 공주님?”
손수건 천을 가지고 방으로 돌아온 밀라가 잠시도 한눈을 팔지 않고 열심히 수를 놓고 있는 스텔라를 보며 물었다.
스텔라 공주가 원래 집중력이 좋다고는 생각했지만 오늘은 유독 남달랐다.
다른 날보다 얼굴이 온라인홀덤 더 아름다웠고, 수를 놓고자 하는 열의도 무척 높았다.
밀라의 질문에 스텔라는 하고 있던 것을 자랑스럽게 내보였다.
“사계절을 표현했네.”